최근 시골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군수가 직접 가정을 찾아 축하하고 지원금을 전달했다는 소식이 종종 전해진다. 한 명의 출생이 지역 전체의 축하를 받는 모습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다. 예전에는 일상이었던 일이 이제는 특별한 사건처럼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.
지방소멸은 더 이상 통계 속 이야기가 아니다. 실제로 지역에 가보면 학교는 통폐합되고, 상가는 문을 닫고, 동네는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. 그래서 많은 정책은 사람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. 출산을 장려하고, 외부 청년을 유입하기 위한 지원책이 이어진다.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상황은 조금 다르다.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, 사람이 있어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.
지역의 한 중소기업 인사 담당자는 "공고를 여러 번 올려도 지원자가 거의 없다"면서, 어렵게 채용을 해도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반복된다고 한다. 그런데 같은 시기, 취업 상담을 받으러 온 청년은 "지원할 만한 일자리가 없다"고 말한다. 기업은 사람을 못 구하고, 청년은 갈 곳이 없다고 느낀다. 같은 지역에서 정반대의 이야기가 동시에 쌓이고 있다.
이 차이는 단순한 눈높이의 문제가 아니다. 청년에게 일자리는 단순히 월급을 받는 수단이 아니라,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출발점에 가깝다. 어떤 일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선택이 달라지고, 그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도 함께 결정된다. 하지만 지역의 일자리는 이 기대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. 처음에는 수도권의 대기업과 비교해 취업이 수월할 수 있다. 그러나 지방에 일자리를 공급하는 기업들의 경우, 본사는 수도권에, 지방에는 생산시설을 가동하는 경우들이 많고, 이러한 생산시설에서의 업무는 몇 년을 일해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더 나은 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. 그렇기에 그 일자리는 ‘경험’이 아니라 ‘정체’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.
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한 청년은 "일은 할 수 있지만, 계속 여기서 일하면 앞으로가 보이지 않는다"고 말한다. 이런 상황에서는 선택이 단순해진다. 같은 자리에 머무르기보다, 더 다양한 기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. 결국 문제는 사람이 없는 것과 동시에,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머무를 이유가 부족한 데 있다.
그래서 지방소멸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와 함께 왜 머물지 못하는가를 살펴야 하는 문제로 인식을 확대해야 한다. 결국 지역에 남느냐, 떠나느냐를 가르는 것은 ‘일자리의 수’가 아니라 ‘그 이후의 가능성’이다.
이제는 사람을 불러오는 정책을 넘어, 머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에도 집중해야 한다. 즉 사람들이 지역에 머물 이유가 생길 때, 비로소 지역에 남게 되는 것이다.
출처 : 충청투데이(https://www.cctoday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2227608)